[서평] 랜들 먼로의 친절한 과학 그림책
과학관련 책은 남성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오랜만에 읽을 만한 책을 뒤지다가, 제목과 디자인이 매력적이라서 구입하게 된 책이다. 그렇지만 기대한 대로의 책은 아니었다.
1. 제목번역에 동의할 수 없다.
원서로 책을 읽을 정도의 영어실력은 아니라서 한글 책을 읽었다. 다 읽고나서 '속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일단 이 책은 전혀 '친절'하지도 않고, '과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원서의 제목인 "Thing explainer"라는 제목이 훨씬 잘 어울린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자면 "사물 설명서"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독서 후의 느낌을 덧붙여 좀 더 풀어쓰자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들의 작동원리나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책"으로 기술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친절한 과학 설명서"가 된 이유는 아마도 마케팅을 위한 목적이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덧붙이자면, 원서의 제목 윗부분에 보면 "Big words that tell you what this book is"라고 쓰여 있는데, 이 부분이 한글판에서는 "이 책의 이름"이라고 번역되어있다. 저자는 제목을 결정하는데도 나름대로 신경을 쓴 모양이다. 그래서 단순한 말로, "thing explainer (사물 설명서)"라고 기술해 놓고 거기에다가 추가적으로, "이 큰글자는 당신에게 이 책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라고 기술해놓은 것이다.
아무튼 내가 전문 번역가는 아니지만, 이런 저자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굳이 "친절한 과학 그림책"으로 제목을 고치고, 그 옆에다가 "이 책의 이름"이라고 적어놓은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들.
제목을 위와같이 이해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먼저 저자의 깊은 통찰력이 놀라운데, 저자는 우리가 주변이나 미디어에서 흔히 접하는 45개의 사물에 대해서 설명을 덧붙여놓았다.
가장 쉬우면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식기세척기, 자동차, 자물쇠, 엘리베이터의 구조와 같은 것인데, 이런 주변 사물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많이 접하는 것들이고 이해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다. 또한, 주변에 아이들이 있다면 사물들의 작동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지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면 과연 그 세척정도는 믿을만 할까? 작동원리를 알면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동차의 보닛에 들어있는 어지러운 구조물들은 과연 무엇일까?
-학창시절에 자물쇠를 가는 철사를 이용해서 열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베이터의 구조는 매우 단순해 보이는데, 정말 내 생각만큼 단순할까? (답은 정말 단순하다였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도 떨어지는 일은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누구라도 실생활에서 할 수있는 것들이고 사물의 구동원리를 읽다보면 여기에 대해서 어느정도 자신만의 결론을 내릴수가 있다. 물론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겠지만 말이다.
3. 효율적인 구조에 대한 고찰.
우주정거장, 컴퓨터빌딩, 키가큰길 (다리) 등을 다룬 부분은 20대에 읽었다면 별로 재미는 없었을 것이지만 30대인 지금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20대 까지는 주로 어떤 것을 소비하는 입장이지만, 30대가 되면 무언가를 만들고 계획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건물을 내 직업적 용도에 맞게 설계하는 경우가 조만간 생길 것이다. 그리고 작게는 지금 "내 사무실의 컴퓨터 배선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조금 더 효율적으로 책상과 컴퓨터와 기타 사무기기의 배치를 하는 방법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컴퓨터 빌딩 (클라우드 스토리지나 웹사이트들의 저장소를 말하는 듯)의 구조에서 "효율적인 냉각을 위한 설계는 어떻게 해야할까?", "각종 배선은 어떻게 해야할까?" "예비 전력은 어디다 설치할까?"등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고 이는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우주정거장도 그 구조에 대해서 학습하는 관점은 어찌보면 지겹지만, "우주에서 사람이 살려고 하면 어떤 구조물들이 필요할까?"에 대해서 생각을 하며 책을 읽다보면 조금 더 흥미롭게 읽을 수가 있다.
4. 전혀 쉬운책은 아니다.
읽아보면 '불타는 물'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이게 오일을 뜻하는 것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세포의 구조에 대해 기술한 페이지를 보면 '작은 동물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생물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 말보다는 '미토콘드리아'라는 말이 차라리 쉽게 느껴질 것이다. 현대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무튼 내용의 일부는, 저자가 '친절'하고 '쉽게' 풀어썼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면서 읽기 때문에 쉬운 것이다. 저자가 '쉬운 단어'로 풀어썼기 때문에 이해가 잘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5.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구조에 관한 페이지를 보면, '생각하는 상자', '아기 컴퓨터', '바뀌는 걸 싫어하는 기계' 등의 표현이 나온다. 컴퓨터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램이나 CPU 등의 구조물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차라리 그런 공식용어를 썼으면 더욱 쉽게 느껴졌을 것을 풀어 쓰는 바람에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이 책의 마지막 용도는 호기심 유발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보는 사물에 이런이런 구조물들이 대충 이런 원리로 움직인다고, 어때 궁금하지? 궁금하면 공부해보던지" 라고 저자가 약올리는 느낌이다. 다 알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맛보기만 보여주고 빠지는 것이다. (물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내용도 있긴하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나서 자동차구조 관련 책을 하나 더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어느정도 이해가 되고 자동차 공부도 하게 되었으니 저자의 의도대로 된 것일까?
다 읽고 나면 내용이 많지는 않다. 마음만 먹으면 2~3일안에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다음에 한번씩 펼쳐보게 된다. 그리고 따로 추가적인 공부도 하게 된다. 일반적인 독서와는 다르게, 사물에 대해서 조금 더 심층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저자가 정말 '설명 (elplain)'하기 위해 글을 썼다면 아주 우수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반면 우리에게 생각할 화두를 던져준 것이라면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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